내가 평균적인 공대 박사과정 학생들보다 많이 한 것이 있다. 바로 리뷰논문 퍼블리케이션이다. 지금까지 (아마 앞으로 졸업할 때까진 없을 예정) 3편의 리뷰논문을 작성했다. 한 편도 안쓰고 졸업하는 박사과정 학생이 대부분인걸 감안했을 때 3편은 나름 상위권에 드는 편수라고 생각한다. 자의든 타의든 리뷰논문을 작성하면서 배우게 된 것들 그리고 나름의 노하우라는 것이 생겨서 오늘 포스팅에선 그것들은 좀 공유해 보려고 한다. (마침 한쥐도 지금 리뷰페이퍼 쓰느라 고생중이니 겸사겸사ㅎㅎ)
이 쯤에서 리뷰논문이 뭔지 궁금할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리뷰논문은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하여 지금껏 출판되어온 논문들을 분석하여 현재 연구 단계가 어느정도에 있고 어떤 이해가 이루어져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요약한 논문’ 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작성한 리뷰논문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붙여놓을테니 확인 해보길 바란다. (만일 동종업계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그..인용좀…ㅎ)
https://doi.org/10.1021/acs.biomac.1c01504
리뷰논문은 리서치논문과는 다르게 어떻게보면 장점과 단점 둘 다 존재하는데 우선 단점부터 생각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보통 리뷰논문은 작성자의 연구 실적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만일 졸업 요건이 있는 학교라고 한다면 리뷰논문은 그 요건에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니 어떤 사람에게는 리뷰논문 작성이 시간낭비라고 할 수 있다.
-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결국 다 지금껏 발표된 논문들을 집대성해서 요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규어 사용시 저작권 문제도 있고, 여러모로 리서치 논문보다 논문 제출 후 리비전 과정에서 변수가 더 많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뷰페이퍼의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 우선 공부가 된다. 보통 자신의 연구주제와 관련하여 리뷰논문을 작성하게 될 텐데, 다양한 논문들을 읽다보면 현재 자신이 하고있는 연구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히 진단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대략적인 연구동향을 파악 할 수 있게 된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더 좋은 리서치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현재 이 분야에 어떤 연구가 활발히 각광을 받고있는지, 어떤 부분은 아직 연구가 덜 되고있는지를 파악하면, 자기연구의 강점을 어필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 전반적인 글쓰기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글쓰기’ 라는 것은 더 복잡한 문장구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거나, 문법적 오류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당연히 이것들도 매우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 능력의 핵심은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확실하게 전달 할 수 있는 전체 글의 큰 그림 그리기’ 라고 생각한다. 리뷰논문 한편에 보통 레퍼런스가 적어도 100개는 들어간다. 그렇다는 것은 100개이상의 스토리를 갖고있는 페이퍼를 긁어모아서 내가 원하는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습이 나한테 큰 도움이 되어서 나중에 리서치 페이퍼 작성시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 마지막 장점은 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말하기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리뷰논문은 인용이 더 많이 되는 경우가 많을 ‘수’도 있다. 이 말은 본인의 논문 인용수가 중요한 경우 (영주권 신청 등등) 에는 리뷰논문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얘기를 해봤는데 그렇다면 이제 리뷰논문 작성은 어떤식으로 진행이 되는지 얘기해보겠다. 철저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니 그 점 참고해주면서 봐주길 바란다.
주제정하기
가장 첫 시작이다.
‘아니 당연한 소리를 하고 앉아있네’
할 수 있지만 진정하고 끝까지 읽어보길 바란다. 주제정하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주제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향후 글쓰기의 과정 혹은 완성된 리뷰논문의 퀄리티가 좌지우지 되기 때문이다. 주제정하기는 일종의 ‘지도 그리기’ 라고 볼 수 있으며 자세할 수록 좋다. 그리고 주제(제목)만 잘 만들어도, 서론 작성은 사실상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겠다. 내 첫 리뷰페이퍼 제목은 ‘Heterogeneous synthetic vesicles toward artificial cells: engineering structure and composition of membranes for multimodal functionalities’ 이다.
콜론 이후 부분은 나중에 수정한 부분이고 앞에 부분이 처음에 정한 제목이다. 만약 이 제목에서 저 뒤에 toward artificial cells 부분이 없었다면, Heterogeneous synthetic vesicles 만 갖고 글을 쓰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내용이 뒤죽박죽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Heterogeneous 부분이 없다면 이 역시 너무 내용이 넓어진다. 그러나 만약 여기서 Heterogeneous synthetic ‘protein’ vesicles toward artificial cells 이런식으로 주제를 잡았다면 또 이건 너무 specific 해서 리뷰논문으로서의 컨텐츠가 부족해 질 수 있다. 즉 가장 핵심적인것은 글 전체 내용이 충분히 명확하게 한 방향을 가르킬 수 있을 만큼 디테일한 주제가 필요하지만 또 너무 과할 시에는 전반적인 내용이 부족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사이를 적절히 잘 줄타기 해야한다.
그럼 이걸 어떻게 알 수 있나? 이것도 방법이 있다.
목차 작성
제목을 완성했으면 그 다음은 목차다. 당연하게도 목차에는 서론, 본론, 결론이 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본론이다. 이 경우도 예시를 들어서 설명해보겠다.
만약에 리뷰논문 주제가 ‘치킨 튀김기 조건에 따른 바삭함 분석’ 이라고 한다면 치킨의 튀김기 조건을 온도와 시간 이렇게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론 1. 기름 온도에 따른 치킨 바삭함 분석
본론 2. 튀기는 시간에 따른 치킨 바삭함 분석
이렇게 크게 나눠놓고 그 다음에 또 세부적으로 생각해본다.
본론1-1 낮은 온도에서 치킨 튀겼을 때 바삭함 분석
본론1-2 중간 온도에서 치킨 튀겼을 때 바삭함 분석
본론 1-3 높은 온도에서 치킨 튀겼을 때 바삭함 분석
본론 2도 마찬가지로 짧은, 중간, 긴 시간 튀겼을 때 치킨 바삭함 분석.
뭐 이런식으로 분류를 해서 공부하면서 읽어본 페이퍼들을 각 본론세션에 맞게 배치해놓으면 큰 그림을 보는데 더 편할 것이다. 본론 목차 작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페이퍼의 퀄리티가 달라지고, 그리고 작성자의 시간 소모 및 정신적 스트레스도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니 주제(제목) 을 정하고 그 주제에 따라 목차를 나눠보면 이 주제가 괜찮은지, 너무 넓거나 너무 좁거나 하는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을 할 수 가 있다.
그러나 이런 목차 나누는 것도 처음이라면 어려울 수 있다. 이걸 훈련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최-대한 많은 논문 읽어보기
별 거 없다. 그냥 최대한 많은 유관 분야 논문을 읽어봐야 한다. 이 논문이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어떤 방법을 써서 그 실험을 해냈는지 등등, 많이 읽다보면 내가 몸담고 있는 이 분야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고 요즘 트렌드는 어떤식의 연구방식 혹은 재료 인가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만일 ‘난 아직도 잘 모르겠던데?’ 라는 생각이 들면, 미안한 얘기지만 덜 읽은거다. 마치 인디언 기우제 마냥 어느정도 감이 잡힐때까지 읽다보면 머리속에서 주제가 잡혔다면 그 주제에 맞는 목차들이 머리속에 촤라락 정리가 될 것이다.
아무튼 최대한 많은 논문을 읽는 것은 리뷰논문을 쓰는 시작점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글 쓰기
사실 주제를 정하고 목차를 나누고 논문을 읽으면서 어느정도 감이 잡혔다면 사실상 리뷰논문 작성의 제일 큰 부분이 끝난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를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다. 나도 처음에 당연히 그랬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럴 것 같다. 심지어 나처럼 토플 라이팅 20점 넘기는게 목표였던 사람들은 더욱 더 흰 워드파일 배경만 봐도 숨이 턱 막힐 것이다.
내가 이겨냈던 방법은 ‘티끌 모아 태산’ 전략과 ‘생각 없이 써라’ 전략이다.
이름부터 오그라들 수 있는데 방금 그냥 머리속에서 지어봤다. 우선 ‘티끌 모아 태산’ 전략부터 보면, 목표를 작게 잡으라는 것이다. ‘전체 글을 이주일 안에 다 써야지’ 라고 생각하면 그 양이 많아보여서 시작하기도 전에 압도될 수 있지만, ‘오늘은 일단 한 단락만 써봐야지’ 라고 하면 별거 아닌것 처럼 보인다. 그 한 단락씩이 모이면 결국 나중엔 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 나눈 목차에서 단락을 여러개 나누어 각 단락마다 ‘키’가 되는 문장을 하나씩 적어두고 거기서 살을 붙여나가는 식으로 진행을 하다보면 한 두 단락은 어떻게 쓸지 감이 올 것이다. 그럼 그걸 여러번 반복하다보면 글 한편이 완성되는 것이다.
‘생각 없이 써라’ 전략은 특히 나처럼 영문법 및 영작에는 경험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많이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 문장을 100번 생각해서 쓰는 것 보다 대충 쓴 한 문장을 100번 고쳐쓰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선 문장이 말이 되든 안되든, 문법이 맞든 안 맞든 일단 문단하나를 완성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아무리 공들여 쓴다고 한들 어차피 나중에 계속 고치고 또 고쳐야 하기 때문에 우선 첫 번째 드래프트를 휘리릭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방법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자주 전체적인 글 방향을 잡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글을 쓰다보면 어느샌가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보지못하고 길을 잃을 때가 온다. 너무 지엽적인 부분에 많은 부분을 쏟는다든지, 전체적인 주제에 맞지 않는 내용을 쓰고 있다든지 하는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는데 잦은 수정은 그 부분을 빨리 알아차릴 수 있게 해준다.
또 하나의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방법인데, 이는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특히 서론부분을 쓸 때 좀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인데 어릴 때 부르던 동요 가사 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나가면 된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 빨간 건 현ㅇ사과 – > 사과는 맛있어 -> 맛있으면 바나나 -> …등등
이 방법을 적용하여 내가 작성한 논문 서론 부분을 예시로 든다면
Artificial cell 중요해 -> synthetic vesicles 은 artificial cell 연구에 아주 중요한 플랫폼이야 -> 그중 예전부터 많은 연구는 homogeneous 한 synthetic vesicles 구조야 -> 요새는 heterogeneous 한 synthetic vesicle 구조가 주목받는데 이유가 이러이러한게 있어 -> 그래서 이 리뷰논문으로 좀 정리를 해보려고해
이런 구조의 서론은 어느 논문에나 (리서치, 리뷰 할 것 없이) 다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연습해두면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
Figure 만들기 (빌리기?)
리뷰논문의 피규어는 저자가 직접 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용하는 논문에서 발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땐 ‘이 피규어를 사용해도 괜찮습니까?’ 하는 허락을 해당 저널에 받아야 하는데 이게 귀찮은건 둘째 문제고 가끔 좀 까다로운 절차를 두는 저널이 있는게 문제다. (운 나쁘면 많은 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럴 땐 과감하게 그냥 거기 말고 딴 논문 찾는게 낫다) 논문마다 다 다르겠지만 화학/화공 분야에선 일반적으로 American Chemical Society (ACS), Wiley 계열 저널은 아주 쉽게 허락을 해주는 편이고, Royal Chemical Society (RSC) 는 조금 귀찮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지만 결국 허락을 잘 해주고,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 이런곳은 꼭 메일을 직접 보내서 답장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허락받는 과정이 좀 오래걸린다. 처음엔 좀 당황스럽고 불편하겠지만 결국엔 다 하다보면 경험이 어느정도 쌓이고 별로 어려운 문제가 아니게 된다. (익숙해지기 전까진 난 스트레스 좀 받았다.)
리뷰어들의 코멘트
내가 제출한 리뷰논문 모두 피어리뷰 저널 (Peer-reviewed Journal) 에 제출한 것이다. 즉 리뷰어들이 우리의 매뉴스크립을 받으면 그들이 우리에게 코멘트를 남겨주고, 그 부분을 우리가 수정해서 다시 보내는 식으로 논문 퍼블리케이션 과정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리서치 논문도 다 이런 식이지만 과연 리뷰논문의 코멘트는 어떤 식인가? 하는 궁금증이 있을 독자를 위해 대략적인 내가 받아본 코멘트들을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이 분야의 ‘ABC’ 교수의 레퍼런스가 많이 없다. 이분의 논문을 더 인용해야한다. -> 가장 흔히 나오는 코멘트다. 가끔 보면 본인이 저 코멘트를 남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억지스러운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전부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해서 말 잘 들었다ㅎ
- 전반적인 글의 구성에 코멘트를 남기는 경우 (ex: section 2 에서 3 넘어가기 전에 이러이런 내용이 추가되었으면 좋겠어 or 결론 부분에 이런 부분을 더 강조해 주면 좋겠어) -> 이런 경우엔 코멘트에 맞춰서 글을 더 추가해주거나 하는 방향으로 리뷰어들에게 성의를 보여주면 된다.
- 인용한 논문의 해석을 지적하는 경우 (ex ‘DEF’ 논문에 대해 이렇게 적어놨는데 묘사가 좀 모자란 것 같아. 더 자세히 써줘) -> 더 자세히 써주면 된다.
그냥 시비를 거는 경우-> 농담이다. 이런 적 없다.
마무리
리뷰논문 어떻게 준비하는지, 어떻게 시작하고 쓰는지, 그리고 어떤 리비전 과정을 거치는지 시작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다 공유해봤다. 처음에 글을 쓸 땐 이렇게까지 쓸 계획이 아니였는데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설명충 본능이 나와버려서 이렇게 된 것 같다. 대부분의 공학 계열 박사과정 학생은 쓸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대충 이런식으로 작성이 되는구나 하는 흥미위주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만일 리뷰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전적으로 믿기보다는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편하게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