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는 꽤나 많은 미국 박사과정생의 블로그가 있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싶어서 몇 개 검색해서 읽어봤다. 여기서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마치 법으로 정해진 것 마냥, 모든 블로그에
‘지도교수 선택 꿀팁’
‘지도교수 고를 때 절대 실패하지 않는 법’
‘지도교수 고를 때 이런 교수는 무조건 피해라’
이런 식으로 간절한 박사과정에 갓 입학한 신입생의 마음을 홀리게 하는 제목의 글들이 꼭 있었다.
그래서 나도 했다ㅎ.
하지만 솔직히 말하겠다. 지도교수 선택에 정답은 없다. 당연히 오답도 없다. 박사과정 쯤 오는 학생들이면 최소 이십대 중반 혹은 후반쯤은 됐을테고 그러면 본인의 선택에 본인이 책임을 진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지도교수 고를 땐 본인이 신중하게 심사숙고 해서 잘 결정해야한다.
만일 이렇게 포스팅을 마쳤다면 이 글은 인터넷에 존재하는 글 중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가장 영양가 없는 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 블로그는 영리적 기능이 없는 (못하는) 블로그 이기에, 내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뇌피셜 잔뜩 들어간) 지도교수 선택 관련된 솔직한 내 생각을 한 번 써보겠다.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하게 먼저 짚어두고 갈 부분이 있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공대, 그것도 화학공학 전공 박사과정 학생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글은 실험실을 선택해야하는 이공계열에게 더 도움이 될 만한 글일 것 같다. (사회과학계열은…정말 모르겠다 어떤 시스템인지..)
지금까지의 연구분야는 '전문'분야가 아니다
이게 뭔 말인가 싶을 것이다. 하나하나 천천히 정리해 보겠다.
이공계열 박사과정에 입학한 학생이라면 학부생시절 학부연구생 경험이 있거나, 석사학위가 있어서 연구경력이 있거나 혹은 저널에 논문도 낸 경우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바탕으로 Statement of Purpose (SOP)를 썼을 것이고 당연히 지원하는 학교에 당신의 기존 연구분야와 어느정도 대응되는 가고싶은 연구실 한 두 군데는 정해놨을 것이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그 학교에 합격을 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을 했다. 아니 근데 이럴 수가…당신이 처음에 러브콜을 보냈던 교수님들은 갑자기 펀딩이 없다고 하거나 이미 다른학생을 뽑았다면서 당신의 받아줄 수 없다고 한다. 여기서 당신의 선택은?
다시 SOP를 썼던 그때의 시절로 돌아가보자. 당신의 학부연구 혹은 석사학위가 A연구분야여서 이 학교에 지원을 할 때도 A 연구분야와 관련이 있는 교수들만 선택지에 넣었다. A 연구분야는 당신이 지금까지 연구했던 ‘연구분야’ 지만 당신의 ‘전문분야’는 아니다. 하물며 박사과정, 박사 후 과정을 비슷한 연구분야에서 계속 연구하신 교수님들조차 여전히 아직도 모르는게 많다고 하시는데, 1-2년의 기간동안 연구한 것을 본인의 전문 분야라고 하기엔 조금 이른감이 없지않아 있는 것 같다.
석사 과정을 한 경우의 학생들이 이런 경우에 가장 많이 낙심하는 것 같다.
‘아 나는 2년동안 전기화학촉매를 연구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시뮬레이션이라니…’
석사과정에서 배운 중요한 것들 중에는 관련 연구분야에 대한 지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에 대한 태도, 논문 찾고 읽는 법,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 등도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다른 연구분야에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여러분에게 큰 밑거름이 될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결론을 말하자면, 그 동안 당신이 연구해왔던 분야는 당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며 새로운 연구분야에 몸 담게 되어도 이때까지 당신이 경험했던 것들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시야를 넓혀서 평소에 궁금했던 다른분야에도 관심을 한 번 가져보면 좋겠다.
‘아니 내가 그 분야를 하고 싶었는데 지금 못하게 되었잖아요! 그게 문제라는 거지!’
라고 반박을 한다면?…미안하다 해줄 말이 없다.
사실 진짜 중요한 건 랩 구성원(학생들)
제일 중요한 것이다. 지도교수가 본인한테 스트레스를 줘도, 상식적인 선 안에 서라면 이해도 되고,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박사과정 학생들 혹은 랩 구성원에게 받는 기타 비상식적인 스트레스 (따돌림, 부조리, 무시등등) 는 그저 당신의 학위과정 삶에 엄청난 장애물이 될 뿐이다. 지도교수랑은 자주봐도 일주일에 한 두번 이지만 다른 학생들은 매일 거의 하루종일 봐야한다. 그러니 내 학위과정 삶에 더 물리적,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는건 같은 랩 학생들이라고 볼 수 있다. 지도교수님이 조금 압박을 주는 스타일이셔도, 같이 압박 받는 학생들끼리 으쌰으쌰하면서 얘기해보면 더 친해지기도 하고 동지애가 생길수도 있다.
그렇다면 랩 구성원들이 당신과 맞는 사람들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대부분 박사과정에 입학하면 첫 학기에 선배들과 친해지라고 소셜활동이 종종 있을 것이다. 그 때 관심있는 랩에 있는 학생과 좀 얘기를 해보면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다른 좋은 방법은 랩 미팅에 참여해보는 것이다. 랩 미팅에 참여하는 것이 연구실에서 현재 연구하고 있는 것에대해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지도교수와 현재 학생들의 관계가 어떤지 알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학생들과 교수님이 어떻게 의사소통하는지, 학생들끼리는 어떻게 서로 연구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받는지, 분위기는 화기애애한지 무겁고 딱딱한지 등등 많은 것을 알아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지도교수 선택 밸런스게임
Assistant Professor vs Full Professor
여전히 갑론을박이 많은 주제다. 소신있게 내 의견 말해보겠다. 그 분야에 당신의 지도교수가 대가라면 후자, 그렇지 않다면 전자가 더 좋을 가능성이 높다. (아주 지독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Assistant Professor는 대부분 테뉴어 심사를 받기위해서 열심히 퍼블리케이션을 생산해 내야하는 입장이다. 그렇다는 것은 지도하는 학생의 퍼포먼스에 신경을 많이 쓰고있고 그만큼 더 세심한 지도를 해줄 수 있다. 그리고 임용된 지 얼마 안되신 분들은 해당 분야에 대해서 가장 최근까지 일선에서 연구를 해오신 분들이기에 좋은 안목을 가지실 확률이 높다.
Full professor 중 절대 다수는 연구를 아주 활발하게 하시는 분들이다. 하지만 극히 일부분은 연구를 활발히 하시지 않고 지도학생들을 잘 케어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분이다. 게다가 이미 테뉴어를 받으신 교수님 중에서는 이제 논문의 개수보다는 질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부분이 극단적으로 가게 되면 ‘높은 저널에 퍼블리쉬 하지 못할 것은 내지도 말자’ 라는 식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그러니 어느정도 연구 경험이 있는 포닥같은 사람에겐 좋을 수 있지만, 논문을 퍼블리쉬 해보는 경험자체도 굉장히 중요한 박사과정 학생에게는 좀 좋지 않은 환경일 수도 있다.
Dry Lab vs Wet Lab
흔히 드라이 랩이라 함은 전산장비를 활용한 랩으로 컴퓨터를 활용한 연구 하는 곳이다. 이쪽 분야에선 분자동역학 (Molecular Dynamic Simulation, MD simulation), 범밀도함수이론 (Density Functional Theory, DFT) 혹은 복합유체역학 (Complex Fluid Dynamics, CFD) 등을 메인으로 연구하는 곳이 그런 드라이 랩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이랩의 장점으로는 시공간적으로 조금 자유롭다는 점을 뽑을 수 있다. 어느곳에서든 컴퓨터가 있다면 서버에 접속하여 전산을 돌릴 수 있다. 단점을 생각해보면, 실험보다는 조금 덜 직관적이어서 초기에 진입장벽이 높을 수 있다.
반면에 Wet lab 은 실험을 하는 연구실을 말한다. 실험을 직접 손으로 해야하기 때문에 시공간적으로 제한을 받는다. 실험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실험실에 나와야 하므로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코로나 같은 상황) 하지만 내가 실험한 결과를 바로바로 볼 수 있어서 조금 직관적이고 초반에 흥미를 붙이기 쉬운 것 같다.
이 대결은 정말 취향차이기 때문에 도저히 선택할 수 없지만 내가 Wet lab이기 때문에 난 wet lab 이 더 좋다.
미국인 교수 vs 아시안 교수
이와 관련된 글만 정말 수십개는 본 거같다.
‘한국인 교수는 피해라, 학생을 노예로 본다.’
‘중국인 교수는 피해라, 중국인만 이뻐한다.’
‘인도인 교수는 피해라, 대부분이 성격이 나쁘다’
진짜 전부 다 말도 안되는 말이다. 물론 저런 의견을 내는 사람은 본인이 아시안 교수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그런 지인을 가까이서 봤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교수의 인종 혹은 국적만 보고 결정을 하는 건 정말로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랩 구성원의 다양성이다.
만약 모든 랩 구성원이 전부 다 중국인 이라면, 그 랩은 되도록 피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 랩의 문제가 있다라기 보다는 비 중국인인 당신이 적응하기 어려울 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랩 구성원이 전부 다 한국인이어도, 그 랩은 되도록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이 처음에 적응하기는 쉬울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당신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미국에 유학을 왔고 그 혜택 중 하나가 미국의 문화 (=다양성) 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인데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랩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건 결국 작은 한국에 들어가게 된 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랩 선택을 할 때 고려해봐야 할 요소 안에 지도교수의 인종과 국적을 포함시키지 말고 랩 구성원의 전반적인 상황을 포함시키는게 더 현명할 것으로 보인다.
뻔하지 않은 얘기를 써보려고 노력했는데 막상 다 쓰고보니 뻔한 말들 뿐인 것 같다. 만약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이 이제 곧 지도교수님을 선택해야하는 박사과정 신입생이라면 꼭 이 말을 해주고싶다.
‘다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으니,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