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걸 안 하는 거야?

내가 장기기증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건 대충 초등학생 때 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 장기기증에 대해서 알게되었다.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대충 장기기증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고 지금 장기기증을 대기하고 있는 환자가 많다는 등의 내용이었던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후, 엄마에게 장기기증이 뭐냐고 물어봤었다. 엄마는

“몸이 아파서 장기가 필요한 사람들한테 장기를 주는 걸 말하는거야. 신장,간, 폐, 심장 같은 걸 줄 수 있어”

라고 설명해주셨다.

나는

“윽, 그걸 주면 난 죽잖아? 그걸 어떻게 해? 만약 안 죽어도 너무 아플 것 같은데”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가

“장기기증은 너가 죽은 다음에 하는거야” (정확히는 뇌사이지만 초등학생의 눈높이를 맞춰주신듯 했다)

“에? 그럼 왜 그걸 안 하는 거야? 어차피 죽은 다음엔 안 아프잖아”

생각의 깊이가 현재 우리집 구름이 (2세 고양이) 랑 엇비슷했었던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왜 사람들이 장기기증 하길 꺼려하는지 이해하질 못했다. ‘어차피 죽으면 땅에 묻혀서 썩거나 태워질 몸, 다른사람에게 새 생명을 선물해줄 수 있는데 왜 안하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궁금증은 꽤나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관심이 거의 다 없어지던 어느 날 어떤 뉴스를 보게 되었다. 장기기증자에 대한 시신처리를 병원 측에서 유가족에게 떠밀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병원측에서 장기 적출을 한 시신을 유가족에게 ‘알아서 가져가시라’ 라고 말하고 유가족은 본인들이 알아서 시신 수습과 장례식장으로 이송까지 다 진행해야 했었다. 기사의 핵심내용은 ‘기증자 예우 미흡’ 이었다. 저 기사를 읽으면서 왜 사람들이 장기기증을 꺼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난 숭고한 일을 했으니 나한테 (내 시신한테) 대접해 줘라!‘ 라는게 아니다. 내 유가족들이 입을 상처가 걱정이었던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내 사랑하는 가족이 뇌사자가 되어 장기기증을 했는데, 장기 적출 후 병원에서 “시신 처리는 알아서 하세요” 라고 한다면 마음을 미처 다 추스리기도 전에 새로운 고난을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를 두 번 입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기증자 예우를 잘하는 병원이 더 많을 거라 믿어의심치 않고 앞으로 더 지원이 확대될거라 생각한다. 혹자는 

‘미국에선 기증자에게 정말 예우를 다 갖추던데 한국은 장기만 빼내고 시신은 나몰라라 한다’

라고 할 수 있지만 세상 어느 나라도 100% 라는 건 있을 수 없다. 미국에서도 기증자 예우를 정말 제대로 하는 곳도 있지만, 실제 어떤 사람은 미흡한 시신처리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두 번 입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는 장기기증을 하기 꺼려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100% 이해를 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기증을 해야한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의견에도 동의한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난 장기기증 신청을 했고, 지금도 이 결정에 후회는 없다. 사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장기기증신청을 꺼려했었지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신청하기로 결정을 했고 내 운전면허증에는 Organ Donor (장기기증 신청자) 마크가 인쇄되어있다. 내가 어쩌다 장기기증을 신청하게 되었을까? 남의 생명을 살리고 싶은 그런 이타적인 마음?, 내가 장기기증을 할 때 쯤엔 기증자 예우가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위 이유들이 없지는 않지만 주된 이유는 아니다.

장기기증 신청을 하면 운전면허증에 저렇게 하트 표시가 인쇄되어나온다.

나는 내 스스로 이기적이고 지독하게 계산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도와줄때는 비용을 생각하고 최대한 저비용의 호의만 베풀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한번 내가 도와줬으면 다음엔 저 친구에게 도움 한번 받을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내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어서 큰 돈을 기부한다면 그건 세금공제의 목적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부자가 안되어봐서 아직 모른다) 정말 옆에 두고싶지 않은 그런 인간군상임에도 불구하고 큰 왕따당하지 않고 (당했을수도…) 살아온 있는 이유는 운이 좋게도 ‘염치’를 갖고있어서 인 것 같다. ‘염치’ 란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란 뜻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으면 반드시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그분에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하고 나중에 도움을 요청하면 선뜻 도와준다. 갑자기 뭔 염치타령이야 할 수 있지만 난 이 ‘염치’란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치 중 가장 현실적으로 사회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갈등의 절반은 사람들이 ‘염치’만 제대로 갖고 있었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가능하다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 내 가족도 당연히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혹은 내 가족이 어떤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서 장기이식을 받아야만 하는 상태가 된다면 난 장기기증자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빌고 염원할 것이다. 그런데 장기기증자가 나타나길 염원한다는 것은 결국 ‘조건이 맞는 누군가 안타까운 사고를 통해 뇌사자가 되어주세요’ 라고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염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내가 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난 무조건 기증자가 나타나기를 원할 것이다. 그래서 난 장기기증을 신청했다. 그래야만 장기이식을 받아도 스스로에게 덜 부끄러울 것 같다. 아니, 그래야 장기기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될 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럼 난 장기기증받을 일 생기면 받고 그 이후에 장기기증 신청을 할래’

그런데 만약 모두가 다 저런 생각을 하면 기증자는 결국 안 나타날 것이다. 결국 누군가는 먼저 시작을 해줘야 선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이미 시작한 분들이 계시고 난 거기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저 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는 방법을 선택했을 뿐, 어떤 숭고한 사명감 이런건 없다. (이것도 결국엔 이기적일 수 있다)

장기기증은 장기이식말고는 방법이 없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숭고한 일인것과 동시에 남겨진 유가족에게 어쩌면 더한 마음의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그러니 반드시 해야한다, 반드시 하지 말아야한다 라는 건 없다. 스스로 깊은 고민을 해보고 결정을 내리면 좋겠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직접 내린 결정이라면 옳은 결정이라고 믿는다.

쿠키

미국에서 장기기증 신청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서 방법을 소개해보겠다.

  1.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주는 곳 (DMV 혹은 지역 tax collector) 로 간다.
  2. Organ Donor 신청하고 싶다고 말한다.
  3. 하트 표시가 붙은 새 면허증을 받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