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한국에 다녀왔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강릉에서 보냈지만 잠깐 서울에 볼 일이 있어서 며칠 정도 서울에서 지냈었다.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오랜만에 책도 좀 읽고 사고싶은 책도 있다면 사오려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그 당시 내 눈에 들어왔던 책이 바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였다. 그게 내가 로버트 기요사키 라는 사람을 알게된 계기였다. 로버트 기요사키는 미국의 투자교육과 금융컨설팅을 하는 기업을 설립한 ‘투자교육가’ 이다. 이 사람의 대표 저서가 바로 1997년 출판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지만 평소 책과 거리가 아주 멀었던 나는 작년 말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처음 마주쳤다.

책의 내용은 강렬했다. (물론 투명한 물에다 어떤 색을 넣던지 그 색으로 변하는 것 처럼, 금융에 대해 제로베이스인 내 뇌는 강렬한 기요사키 할아버지의 메세지로 물들었다) 이 저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논외로 하고, 전반적인 책의 내용과 메세지들에 대해선 난 동의한다. 몇 가지 소개를 해볼 테니 궁금하다거나 혹은 반박을 하고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돈이 아깝다면 나한테 와라, 싸게 대여해주겠다ㅎ)

‘자산’ 이란 내 주머니에 돈을 넣어다 주는 것, ‘부채’란 내 주머니에서 돈을 뺏어가는 것.

‘돈을 위해 일하지말고,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해라’

‘재산이란 사람이 앞으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 즉 오늘 내가 일을 그만둔다면 앞으로 오랫동안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금융 IQ 의 구성은 회계, 투자, 시장에 대한 이해, 법률 이다.’

이 책을 사서 여러 번 읽어봤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빌려주면서 추천해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 저자가 만든 ‘Cash Flow’ 라는 보드게임을 친구가 갖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보드게임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져 그 친구에게 게임을 같이 해볼 수 있냐고 물어봤고 흔쾌히 허락해줘서 그 친구집에 놀러가서 게임을 해보았다. 이 포스팅은 게임 룰에 대한 리뷰보다는 게임 후에, 그리고 게임 중간중간 느낀 생각과 이 저자의 의도가 무엇일까에 대한 내 생각을 위주로 적어보겠다. 

Cash Flow 보드게임. 새앙쥐 레이스에서 탈출하라!
보드게임 판 모습. 가운데가 새앙쥐 레이스 (Rat Race) 여길 벗어나면 2단계로 갈 수 있다.

기요사키 할아버지는 본인의 책에 돈을 위해 일을 하는, 즉 근로소득을 폄하하는듯한 내용의 글을 쓰셨다. 가난한 아빠는 항상 돈을 위해 일을 하셨고, 결국 돈의 노예가 되어서 돈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셨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한 저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돈이 나를 위해서 일을 하게 만들어서 패시브인컴 (주식배당금, 채권 이자, 투자부동산에서 나오는 월세 등등) 이 내 모든 지출을 감당 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 상태가 되자. 그렇게 되면 노동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져서 새앙쥐 레이스 (Rat race)를 벗어나 내 꿈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결국 이 게임의 본질이자 전부이다.

“투자하자 -> 패시브인컴을 늘리자 -> 패시브인컴이 내 모든 지출보다 커지는 것이 목표”

목표 설정의 중요성

처음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바깥쪽 레이스에서 나의 꿈을 하나씩 선택을 하게 된다. 이 단계는 게임의 승패와는 크게 상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 게임에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 돈 많이 벌어서 자산을 많이 쌓아서 더 이상 일을 하지않아도 돈이 계속 쌓이는 상태에 들어갔다고 하자. 그 다음은? 그래서 뭐? 하고싶은게 뭔데? 라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이런 패시브인컴을 만드는 일 자체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물론 ‘돈이란게 당연히 없는것 보다 있는게 낫지’ 라고 할 수 있지만 철학 없는 투자의 결말엔 허무와 공허만이 남을 것 같다. 이 게임 이후 나도 내가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물론 죽기전에 할 수는 있을런지 모르겠지만ㅎ)

내 꿈은 프로스포츠 팀을 갖는 것으로 했다. ($200,000 밖에 안한다고? 공 세 개는 더 붙여야될 것 같은데..)
내 말은 보라색이다. 치즈는 내 꿈에다 올려놓으면 된다.

직업과 연봉 그리고 비용

게임을 시작할 때 무작위로 직업카드를 뽑는다. 이 직업은 다양하게 있고 그들의 연봉도 작은 직업부터 고소득 직업까지 있다. 그렇다면 무조건 고소득직업을 뽑는게 이득 아닌가! 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게임의 밸런스를 위해서 고소득자는 평균 지출내역이 저소득자에 비해 많다. 즉 저소득 직업보다 더 많은 패시브인컴을 만들어내야 이 새앙쥐 레이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뽑은 직업은 저소득직업 (Mechanic) 이었고 한쥐가 뽑은 직업은 상대적으로 고소득 직업이었다. (Business manager) 나의 패시브 지출은 대략 1,300 정도였고 한쥐의 패시브 지출은 대략 3,200정도 였다. 저 새앙쥐 레이스를 탈출하기 위해 모아야하는 패시브인컴이 나보다 한쥐가 두배 이상 많았다. 실제로 게임을 하는 4명중에서 저소득직업을 뽑은 플레이어일 수록 먼저 1단계 (새앙쥐 레이스) 를 통과해서 2단계로 넘어갔다.

내가 뽑은 직업은 Mechanic. 작고 귀여운 샐러리를 갖고 있다.
게임에 사용되는 게임머니. 시작할 땐 본인의 Asset + Cash flow 만큼의 금액을 갖고 시작한다.

하지만 고소득자라면?

고소득 직업의 장점은 저소득 직업보다 더 큰 캐쉬플로우에 있다. 예를 들어보겠다. $10,000 샐러리의 변호사와, $2,000의 메카닉이 있다고 하자. 당연히 생활비가 변호사가 더 많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도 캐쉬플로우가 변호사가 더 많다. 변호사의 월 지출은 약 $7,000, 메카닉은 약$1,300 이므로 각 직업의 캐쉬플로우는 각각 $3,000과 $700 정도 선이다. 게임을 하는 동안 저소득직업을 뽑은 플레이어가 더 빨리 새앙쥐 레이스를 탈출했다. 그러나 투자의 기회는 캐쉬플로우가 더 많은 고소득직업군에게 훨씬 많이 주어졌다. 매 달 $700 가지고는 아무리 투자기회가 온다고 한들 투자를 할 돈이 없었다. 돈이 있다고 해도 섣불리 투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간에 Doodads 라는 약간 비정기적 소비가 발생할 때가 있는데 이 비용은 상대적 비용이 아닌 절대적 비용이기 때문에 저소득 직업이 그 비용에 더 취약해서 대비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최소한의 안정적으로 갖고 있어야하는 금액의 차이가 캐쉬플로우의 차이만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 때문에 나는 몇번이나 주사위를 던졌고 투자기회가 왔지만 부동산투자는 거의 할 수 없었고 (다운페이먼트 $5,000 이 없었다.) 주식투자만 가능했었다. 부동산을 좋아하는 기요사키 아저씨의 특성상, 패시브인컴을 팍팍 늘리려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취해야한다. 부동산 적극 투자 -> 다운페이할 캐쉬 필요 -> 고소득직업이 유리했다. 한쥐의 패시브인컴 쌓이는 속도가 나나 다른 저소득 직업을 갖고있는 플레이어보다 훨씬 빨랐다.

아이는 패널티?

이 게임을 소름끼치게 현실적으로 만드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바로 중간에 Baby Birth! 라는 칸이 있다는 것이다. 각 직업카드에는 아이당 양육비가 책정되어있다. 저소득직업의 양육비는 적고 (나의 경우 $110) 고소득직업의 양육비는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한쥐는 $240). 주사위를 굴려 해당칸에 도착할경우 자녀가 한 명씩 추가가 되며 월 지출이 늘어나게 된다. (최대 자녀는 3명까지) 그렇게 되면 당연히 탈출하기위해 만들어야하는 패시브인컴의 양도 늘어나게 된다. 이 설정에 대해서 생각해볼만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Baby Birth 칸에 걸리게 되면 플레이어들은 다 똑같은 행동을 했다. 머리를 부여잡거나, 한숨을 쉬거나. 오로지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아이의 존재는 부모입장에서는 추가 지출의 대상일 뿐이다. 애초에 게임의 목적이 금융적인 이해를 돕기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난 주사위를 잘못 던져서 아이를 세명이나 낳게 되었다. 덕분에 월 지출은 크게 늘어났다. 심지어 Doodads 항목에는 아이가 있을시 늘어나는 지출 항목 카드도 따로 있었다. (게임기 사주기 $50, 여름방학 캠프 $200, 당신의 딸이 결혼했다. 반지 사줘라 $4,000) 정말 지독하고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오다보니 문득 ‘나도 우리 부모님에게는 금융적인 빚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생기는게 벌칙이 되어버린 보드게임판의 모습이 그저 웃으며 딴 세상일 처럼 바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싫은 부분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소득별 자녀의 양육비 차이였다. 이 부분 역시 현실반영을 제대로 했다. 소득이 높은 직업일 수록 자녀 한명당의 양육비가 높고, 소득이 낮으면 양육비 역시 낮았다. 아이 양육비를 생각해보면 먹는 거, 입는 거, 쓰는 거, 배우는 거, 뭐 이런 것들일 것이다. 태어날 때는 모든 애기가 똑같이 태어나지만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가지고 노는 것은 천지차이가 될 것이다. 아이가 잘못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아니 그냥 부모의 소득이 낮아서. 이 게임에서 난 세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 셋의 양육비 총합이 변호사 혹은 의사 직업의 한명 양육비 보다 낮았다. 그냥 편하게 비유하면 의사 아이가 오리온 초코파이 한 개 먹을 때, 내 아이는 세 명이서 롯데 초코파이 한 개를 나눠먹어야 한다. (이 게임을 대한민국에서는 판매 할 수 없게 해야 하지 않을까…)

절약의 중요성

경제적 자유와 절약하는 삶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 처럼 보였다. 그러나 게임이 끝난 후, 어떻게 보면 절대 분리될 수 없는 것들일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제작자는 캐쉬플로우와 지출을 어느정도 조정을 해주면서 직업 간 밸런스를 맞춰주었다. 현실은 어떨까? 내 커리어 개발을 하면서 샐러리를 마음껏 높이고 (고소득) 절약하면서 살면 (저지출) 생활비도 줄일 수 있다. 즉 고소득 저지출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이런 직업이 이 보드게임 판에 있었다면 그 직업 뽑으면 게임이 너무 쉬웠을 것이다) 문제는 커리어 고소득자가 되는 것이…뭐 남들에겐 쉬울 수 있지만 내 기준에선 그리 쉬운 일이 아닌것 같다. 한국에서도 다들 흔히 ‘사짜’ 직업을 갖기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10 대 20대를 공부하고 경쟁하면서 보내도, 극소수만이 살아남고 고소득을 이뤄낼 수 있다. 미국이라고 다르겠나 싶다. 어느 나라든 누구나 고소득을 원하니 수요가 높아지고 경쟁을 일으키고 반드시 소수의 승리자 다수의 낙오자가 생기게된다. 그럼 다수의 낙오자는 고소득자가 되지 못했으니 끝인가? 아니다. 우리에겐 저지출이 남아있다. 저지출은 새앙쥐 레이스에서 고소득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오히려 탈출 속도는 조금 더 빨랐다) 그렇지만 저지출은 남들과 경쟁할 필요 없이 본인 스스로랑만 싸워서 이기면 된다. 저지출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많고 대체로 소득을 높이는 것 보다 더 쉽다. 이 게임은 절약의 중요성을 내게 더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고통스러운 절약

‘오! 절약을 하면 더 많은 현금흐름 (=캐쉬플로우) 를 만들 수 있고, 그 금액을 투자하여서 패시브 인컴을 만들고 경제적 자유에 이를 수 있는 거였구나! 아이고 그걸 몰랐네! 이제부터 절약해야지!’

맞다. 비아냥이다. 이걸 몰라서 돈을 펑펑쓰는 사람은 없다. 돈 아끼면 당연히 좋다. 절약의 중요성은 초등학교 다닐 때 부터 들어왔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어찌보면 소득 높이기만큼 지출을 줄이기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너무 고통스럽다.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다. 오래 지속하다보면 포기하고 싶어진다.

절약의 중요성에 대한 게시글, 강의 영상, 책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절약의 고통, 그 고통을 어떻게 슬기롭게 이겨내야 하는지에 대한 토의는 사람들 사이에서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왜 해야하는지도 알고, 어떻게 하는지 방법도 다 알고 있는데 실천하기 어렵다. 결국 자기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인데…누구 노하우 아는 사람 있으면 공유 좀 해주길 바란다.

리스크 관리 (현실 로그아웃?)

같이 플레이를 하던 나 포함 네 명 중 몇 턴 하기도 전에 파산을 했다. 주사위 운이 안좋아 downsize 칸에 두 번 걸린게 컸다. (downsize = 1달 지출을 은행에 내고 두 턴을 쉬어야한다.) 주사위 운이 안좋아서 아쉽게 파산을 하고 게임에서 일찍 빠져야 했지만 현실이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게임은 그냥 ‘오케이 난 이번판 빠질게’ 하면 되지만 현실의 삶은…로그아웃을 못 한다.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데….) 중간에 빠질수도 포기할 수 도 없는 게임이 바로 현실이다. 그러니 더욱 리스크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도전하고 실패하면 캐릭터 새로 생성해서 다시 시작하는 MMORPG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튼튼한 재정적 완충장치 설치는 가장 중요하다. 재정적 완충장치는 현금,재산 혹은 보험이라고 볼 수 있다. 일을 쉬거나 급하게 큰 돈이 필요할 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 이런 완충장치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줌으로써 더 큰 추진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의 굴레에 벗어난 후

패시브 인컴이 지출을 넘어서게 되면 가운데에서 빠져나가게 되고 2라운드로 돌입한다. 2라운드는 너무 쉬워서 어떤 리뷰도, 전략도 필요하지 않다. 그게 이 게임의 설계방향인 것 같다.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돈이 나를 위해 일을 하는 단계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의 인생이 그 전에 비해 훨씬 쉬워지게 된다는 것, 그것을 알려주는 게 이 보드게임의 설계목적인 셈이다. 기요사키 할아버지가 책에서 그토록 말하던 ‘자산을 모아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져라’를 실현해보니 게임은 금방 끝이 났다.

마무리

이 보드게임은 끝나고 나면 여운이 깊다. 뭔가 생각이 많아지게 되고 괜히 삶을 한번 돌아보게 된다. 게임에서 주는 메세지는 확실하고, 그 메세지는 나에게 울림을 준다. 그리고 그 울림이 날 변화시켜 줬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게임 끝나고 하루지남 ㅎ) 돈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더 기요사키 할아버지가 의도한 방향대로 바뀐 것 같은데 문제는 이걸 얼마나 지속시키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최대한 오래 유지하여서 새앙쥐레이스에서 벗어나 삶을 내 주도적으로 기획해나갈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쯤 이 게임을 다들 플레이 해봤으면 한다. 나와는 다른 울림을 느낄 수 있고 그게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