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도 절반 정도 지나갔다. 15분정도 걸리는 비교적 짧은 통근시간에도 불구하고 출퇴근하면 머리가 어질어질 해지는 플로리다의 더위는 햇수로 4년째 살고 있어도 적응이 어렵다.
다른 전공 박사과정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이공계 박사과정 학생들은 여름학기, 가을학기, 봄학기 구분할 것 없이 다 본인 연구를 계속 진행한다. (나에게 ‘방학인데도 출근해?’ 라는 질문을 인문사회계열 박사생에게 들었을 때 우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함, 개부럽) 다른 점은 수업이 없고 학교가 좀 한산해져서 더 집중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런 이유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학기보다는 더 연구에 집중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기이다.
이번 여름학기 시작할 때 세웠던 목표들이 있다. 일차적으로는 가을학기 개강 직후 갈 학회에 있을 데이터를 얻어야 하는 목표가 있고, 또한 추가적으로 새로운 실험방법을 내 연구에 적용시킬 방법을 좀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아직까진) 실험은 절대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고 나름 날카롭게 세웠던 가설은 언제나 빗나간다. 계속되는 실험 실패는 날 깊은 심연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 같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우울에 빠져있거나 자기비하를 하고 있진 않다. (이런 감정은 1도 도움이 안된다.) 그저 짜증이 날 뿐. 주변에 한국인이 없어서 실험할 때 잘 안되면 혼잣말로 육두문자를 중얼중얼하면서 내가 다루고 있는 단백질에게 책임을 돌리면 좀 멘탈 관리가 된다.
이번 여름은 나에게 꽤 중요하다. 다음 가을학기부턴 나도 어느덧 4년차…박사과정 학생이 된다. 1부터 5까지 숫자중에 확실하게 4부터는 뭔가 후반부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4년차가 되기 전 지금이 나에겐 약간 반드시 레벨업 해야하는 순간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레벨업은 커녕 혼자 실험실 벤치에서 조용히 X발X발 거리면서 파이펫 만지고 있는 싸이코의 모습을 하고있다.
같은 연구실 1년 위 선배가 슬슬 졸업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이 있다.
‘어? 쟤 다음은 난데..?’
물론 오는 덴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덴 순서 없는게 박사과정이지만 어느정도 슬슬 나에게도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은 부정 할 수 없다.
21년도에 박사과정 입학 했을 때는 내가 졸업 할 때 쯤 뭔가 할줄 아는 것도 많아지고 아는 것도 많아지고 내가 티비에서 보던 (주로 포켓몬스터 오박사님) 그런 박사님의 모습이 되어 있겠구나 라고 어렴풋이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근데 막상 중간정도를 막 지나서 후반부로 넘어가니까
‘어? 이래도되나?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고 아는 것이 많이 없는 것 같은데…이대로 졸업하다간 물박사 되는거아냐? 아니 졸업은 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든다. 쓸모 없는 생각인거 알지만, 자꾸 그런생각이 드는 걸 막기가 참 어렵다. 이럴 시간에 실험이나 한번 더 하고 페이퍼나 한 개 더 읽어야겠다.
봄학기 쯤 제출했던 페이퍼의 리뷰어 코멘트가 도착했다. 리뷰어는 총 3명. 1번 과 2번 리뷰어는 되게 호의적인 코멘트를 남겨줘서 답변을 쓰는게 어려울 것 같진 않다. 문제는 3번 리뷰어. 메이저 리비전을 요구하기도 했고, 코멘트들이 상당히 매콤했다. 몇 가지 코멘트는 ‘아 이거 좀 억까인데..’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었는데 한 두 코멘트는 좀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이번 페이퍼를 제출하면서 ‘이 부분만큼은 리뷰어가 콕 찝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있었다. 사실 이런부분이 있으면 안됐다. 내 스스로도 내 페이퍼의 공격받을 부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보면 허술하게(?) 대비했다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 당시 그 부분을 방어할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고 그냥 운에 맡기자 했던 부분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제대로 찔렸다. 이번엔 어떻게든 그 부분을 방어해내고 다음 페이퍼를 낼 때는 좀 내가봐도 완벽한 스토리의 페이퍼를 제출해야겠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또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